제 2장은 주의와 지각의 함정,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가를 다룬다. 부제는 확증 편향과 선택적 주의가 만드는 주관적 현실이다.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을 본다.
귀를 열면 소리를 듣는다. 인간은 스스로 카메라 렌즈나 녹음기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의와 지각의 함정 속에서 많은 정보를 놓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한 착각이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객관적인 기록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필터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사람의 감각 기관이 그렇다.
매 순간 엄청난 양의 정보가 우리의 오감(Five Senses)을 폭격한다. 이러한 모든 정보를 뇌가 전부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과부하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똑똑한 방어 기제를 진화 시켰다. 바로 무수한 정보 중 일부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기술이다. 이번 장에서는 인간이 세상을 지각(Perception)하는 방식에 숨겨진 흥미로운 함정들을 파헤쳐 본다.
주의와 지각의 함정, 선택적 주의
시끄러운 파티 장을 떠올려 보자.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울린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있다. 엄청난 소음이다. 하지만 당신은 바로 앞에 선 사람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국의 인지 과학자 콜린 체리(Colin Cherry, 1914~1979)는 1953년 이를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 라고 이름 지었다.

인간의 주의력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같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곳은 환하게 보이지만, 그 밖의 공간은 어둠 속에 잠긴다. 칵테일 파티 효과는 바로 이러한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에만 무의식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일상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발견된다. 시끄러운 공원 한가운데를 걷는다고 가정하자. 수많은 강아지가 짖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하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다르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기집 애기인 앙증맞은 포메라니안(Pomeranian) 이나 미니 비숑 프리제(Mini Bichon Frise)의 익숙한 발소리와 작은 짖음은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사랑하는 손자와 놀이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도, 자기 손자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는 마치 스피커를 켠 듯 귓가에 꽂힌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고 관심 갖는 대상에만 선택적으로 주파수를 맞추기 때문이다.
선택적 주의가 만드는 현실 왜곡
선택적 주의는 우리의 에너지를 아껴주는 유용한 기능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완전히 놓쳐버리는 현상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무 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라고 부른다. 시력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눈앞에 있는 대상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다.

가장 유명한 실험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 1969~)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 1965~)가 1999년에 진행한 투명 고릴라 실험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팀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 세어보라고 지시했다. 영상 중간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난다. 고릴라는 화면 중앙으로 걸어와 가슴을 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무려 9초 동안이나 화면에 머문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한 참가자의 약 50%가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다. 눈을 뜨고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뇌는 고릴라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함 놀라운 실험은 이후 <보이지 않는 고릴라, The Invisible Gorilla, 2010>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의 일상과 업무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 과거 육군의 대대장(Battalion Commander)과 같은 야전 지휘관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작전 지도를 펼쳐 놓고 핵심 표적과 주력 부대의 이동 경로에 극도로 집중한다. 이때 적의 미세한 기만 전술이나 예상치 못한 기상 변화 같은 주변의 징후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기 쉽다. 중요한 것에 집중할수록, 주변의 명백한 위험을 놓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각 오류와 심리적 착각
우리가 세상을 왜곡해서 보는 또 다른 강력한 이유는 기대와 신념이다. 우리는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강한 본능이 있다. 영국의 인지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 1924~2003)은 1960년대에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용어로 정립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찾는다. 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증거는 무시하거나 깎아 내린다. 인간은 진리를 찾는 과학자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는 변호사에 가깝다.

정치적 논쟁을 보라. 같은 뉴스를 보고도 보수와 진보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각자 자신의 프레임에 맞는 문장만 발췌 하여 기억한다. 타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누군 가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면, 그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만 눈에 띈다. 그가 가끔 베푸는 호의나 이타적인 행동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며 쉽게 평가 절하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통찰과 맞닿아 있다. 니체는 사실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 라고 선언했다. 이를 관점 주의(Perspectivism)라고 한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객관적 세계는 없다. 오직 자신의 경험, 지식, 욕망이 투영된 주관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관점이 빚어낸 가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주의 지각 함정 줄이기:프레임 효과
우리의 지각을 흔드는 또 다른 요소는 상황이 제시되는 틀, 즉 프레임(Frame)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인지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1937~1996)와 대니얼 카너먼은 프레임 효과(Framing Effect)를 입증했다. 동일한 내용이라도 어떤 언어적 틀로 포장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선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의사가 말한다. 이 수술의 생존율은 90%입니다. 환자는 안심하고 수술에 동의한다. 반면 이렇게 말해보자. 이 수술의 사망률은 10%입니다. 환자는 공포에 질려 수술을 망설인다. 생존율 90%와 사망률 10%는 수학적으로 동일한 확률이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긍정적 프레임과 사망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은 전혀 다른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 마케팅, 정치 텍스트, 언론 보도는 모두 의도 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주체적으로 지각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던져 진 질문과 상황의 틀 자체를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연구소 관점의 인지 정보 탐색
이처럼 우리의 인지는 불완전하다. 주의는 선택적이고, 눈앞의 고릴라도 놓치며, 믿고 싶은 것만 본다. 심지어 말의 포장지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영 편견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인지적 한계를 깨닫는 것 자체가 위대한 첫걸음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발휘해야 한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확고했던 나의 판단에 정말 그럴까? 라는 의심을 해 봐야 한다.

해결책은 주의에 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주의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계절이 바뀌는 정원의 변화를 가만히 응시해 보자. 봄 날 화단에 피어나는 작은 새싹이나, 가을 날 붉게 물드는 나뭇잎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보라. 늘 걷던 길의 흙냄새, 피부에 닿는 바람의 온도를 새롭게 지각해 보라.
자동화된 시선을 거두고 세상의 디테일을 찬찬히 음미할 때, 굳어있던 뇌의 신경 회로가 새롭게 열린다. 내가 만들어낸 주관적 현실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타인과 세계를 더 넓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된다. 좁은 스포트라이트를 끄고 은은하고 넓은 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다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