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무소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 넓은 집과 더 좋은 물건,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인정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죠?. 원하던 것을 얻어도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새로 산 물건은 금세 익숙해집니다. 어렵게 오른 자리에서는 내려갈 일이 걱정됩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 다음에도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무소유로 사신 법정 스님
행복하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불안이 시작됩니다. 법정 스님은 이러한 삶의 방향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입니다. 그 분은 더 얻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커질수록 조용한 곳으로 물러났습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소유보다 존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법정 스님은 진정 행복하셨을까요? 가난하고 불편한 산 중 생활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세속을 떠났다고 모든 번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산다고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분의 삶에는 분명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기쁨은 많이 가져서 생긴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자연과 이웃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찾아오는 잔잔한 기쁨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행복은 무엇이 달랐을까?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습니다. 1950년대 중반 출가한 뒤 효봉 스님의 문하에서 수행했습니다. 이후 불교 경전 번역과 불교 사전 편찬에 참여했고, 글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는 197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쓴 문장대로 살고자 했던 수행자였습니다. 그 분은 실제로 불필요한 것을 줄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마저 경계했습니다.
<무소유>가 널리 읽히며 그 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는 더욱 외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1992년에는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하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말 년에도 건강이 악화되자 자신이 머물던 산골 오두막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집니다.

법정 스님의 삶
보통 사람은 인기가 높아질수록 더욱 큰 무대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은 반대였습니다. 사람들의 박수보다 고요함을 원했습니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평가에 따라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정 스님의 행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행복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와 실제 생활이 어긋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같았습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삶을 살 때 쉽게 지칩니다. 단순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남에게 뒤처질까 두려워 소비합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서도 인정받기 위해 계속 일합니다. 평온해지고 싶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마음과 달리 생활하는 삶이 보통 사람의 삶입니다. 법정 스님은 달랐죠. 그 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그 분이 행복한 첫 번째 이유였을 것입니다.
산골 오두막에서 발견한 즐거움
산속의 삶이 낭만적일까요? 겨울에는 춥습니다. 물을 얻고 불을 지피는 일도 노동입니다. 도시처럼 필요한 물건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도움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법정 스님은 직접 움직이고 기다리는 과정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장작을 마련하고,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고,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의 생활은 자신의 내면과 자연을 더 가까이 만나는 방식이었습니다.
편리한 삶에서는 작은 불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방이 따뜻해집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옵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주문합니다. 필요한 것이 즉시 채워집니다. 편리함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너무 쉽게 해결되면 감사할 기회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따뜻한 방이 왜 고마운지 잊습니다. 한 잔의 물이 얼마나 귀한지 느끼지 못합니다. 제철에 피는 꽃보다 화면 속의 화려한 영상에 시선이 머뭅니다.

산골의 법정 스님
산 중의 생활에서는 작은 변화도 하나의 사건이 됩니다. 얼었던 땅이 녹습니다. 새 잎이 돋습니다. 새 한 마리가 가까이 날아옵니다. 오래 기다리던 꽃이 핍니다. 이러한 모든 순간은 돈으로 구매하는 즐거움과 다릅니다.
소유할 수 없기에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붙잡을 수 없기에 그런 순간에 더 충실하게 됩니다. 자연은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지만,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은 행복을 평범한 하루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서 찾았습니다. 차 한 잔을 제대로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 필요한 만큼만 먹는 일, 해가 지면 하루를 내려놓는 일, 그리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돌아 보는 일 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자극 속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끊임없이 도착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가 실시간으로 보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쉬는 순간에도 휴대전화를 확인합니다.
법정 스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행복한 삶을 부정하는 분들은 행복을 알아차릴 여유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요?
무소유의 의미는 무엇일까?
법정 스님의 행복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소유입니다. 그 분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고, 불필요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물건이 사람을 소유한다는 데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물건으로 부터의 소외입니다.
자동차를 사면 흠집이 날까 걱정합니다. 비싼 옷을 사면 옷에 상처가 날까 신경 씁니다. 넓은 집을 마련하면 유지 비용과 대출금이 따라옵니다. 소유가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관리와 걱정도 늘어납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의 근심이 생겨 납니다.

법정 스님 무소유의 의미
법정 스님은 소유가 가지는 심리적 불편함을 일찍이 알았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줄이면 관리할 일이 줄어듭니다. 비교할 이유도 없습니다.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물건을 정리한 자리에 시간과 자유가 생깁니다. 법정 스님의 행복은 바로 그러한 자유로움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더 좋은 것이 보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행복을 소유의 크기와 연결하면 만족은 사라집니다. 법정 스님은 물건의 소유보다 마음의 평안을 귀하게 여긴 분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외롭지 않으셨을까?
혼자 있는 삶을 행복이라고 말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 외롭습니다. 산속의 고요함도 적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에게도 외로움이나 번민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 역시 인간이니까요. 법정 스님은 고요한 삶을 원하였습니다.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하신 겁니다. 외로움은 고통이며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독은 다릅니다. 고독은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독을 선택한 사람에게 고독은 행복입니다.

고독을 즐기신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은 사람이 싫어서 산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사람들 속에 있으면 관계가 습관이 됩니다.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립니다. 칭찬에 들뜨고 비판에 상처 받습니다. 그 분에게 고독은 관계를 정화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산 중에서 홀로 살면서도 글과 법문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또한 시민 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통해 이웃과 사회와 소통하였습니다. 여기에 법정 스님의 행복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가 있습니다. 그 분은 산 중에 계셨으나 혼자 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나눌 때 더 커진 법정 스님의 행복
법정 스님은 마음을 맑게 하는 일이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보셨습니다. 마음의 평화만 추구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자기 만족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구체적인 선행과 나눔을 삶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시작된 활동이 <맑고 향기롭게> 운동입니다. 모임은 마음을 맑게 하는 활동,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활동, 자연을 살리는 활동을 주요 방향으로 삼았습니다. 좋은 책 읽기와 수행, 결식 이웃을 위한 음식 지원, 장학금 지급, 복지 시설 봉사, 숲과 환경을 지키는 활동 등을 이어왔습니다.

나누는 행복
여기에서 무소유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남는 것을 필요한 사람과 나눌 수 있게 합니다. 소비를 줄이면 자연에 남기는 부담도 줄어듭니다. 욕망을 덜어낸 자리에 다른 생명을 바라볼 여유가 생깁니다.
법정 스님이 생각한 행복은 혼자 조용히 누리는 평온 만은 아니고 그러한 평온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로 전하는 것입니다. 맑음이 개인의 내면에 관한 것이라면, 향기로움은 그런 맑음이 사회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선물을 받을 때 기쁩니다. 그러나 선물을 줄 때도 또 다른 기쁨을 느낍니다. 받는 기쁨은 원하는 것이 채워지는 기쁨입니다. 주는 기쁨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쁨입니다.
법정 스님이 느낀 평화는 글이 되었고, 법문이 되었고, 시민 운동이 되었습니다. 도시락과 밑반찬이 되었습니다. 장학금과 봉사 활동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길상사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유
법정 스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길상사입니다.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대규모 요정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소유주였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글과 가르침에 감명을 받아 이 공간을 사찰로 내놓았습니다. 여러 과정 끝에 이곳은 1997년 <맑고 향기롭게> 운동의 근본 도량인 길상사로 문을 열었습니다.

길상사의 가치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마음도 소유입니다. 공을 인정받으려는 마음도 소유입니다. 선행을 하고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도 또 다른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나눔을 하되, 나눔의 흔적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길상사는 이러한 정신이 공간으로 구현된 사례입니다.
큰 재산이 한 사람의 손을 떠나 많은 이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유용한 사색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내려놓았기에 오히려 더욱 오래 남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소유란 자신의 이름으로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누리도록 내어 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책을 사랑한 수행자의 소박한 즐거움
법정 스님은 자연을 가까이한 수행자면서 책을 사랑한 작가였습니다. 그 분은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불교 사전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산문을 통해 수행자의 생각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전했습니다. 그 분의 글은 일상의 경험을 담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책을 읽는 행복은 소유의 행복과 조금 다릅니다. 책은 시야를 넓혀 줍니다. 다른 시대와 장소를 만나게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게 하고, 익숙한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책을 사랑한 스님
법정 스님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났습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과 고민을 세상에 건넸습니다. 다만 그 분은 자신의 글과 명성에도 집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글이 사랑 받는 이유는 그 분의 삶에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아름다운 문장보다 정직한 삶에서 큰 울림을 받습니다. 그 분에게 글쓰기는 삶을 다듬는 수행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법정 스님의 행복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법정 스님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산속 오두막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가족을 돌봐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해야 합니다. 돈도 필요합니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도 현대인의 삶에 유용합니다.
무소유를 실천하겠다며 책임까지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소유와 맺는 관계입니다. 물건을 쓰되 물건에 끌려 다니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돈을 벌되 돈이 삶의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되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법정 스님의 청빈한 삶
작은 비움은 작은 자유를 만듭니다. 비워진 서랍에서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비워진 일정에서는 쉴 시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워진 마음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행복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정말 소중한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분에게는 자연이 있었습니다.책이 있었고, 고독이 있었고, 소유를 나눌 이웃이 있었으며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함은 삶을 지탱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들입니다.
행복은 더하지 않고 덜어내는 삶
우리는 보통 행복을 덧셈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더 많아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물건이 하나 더 생기면 만족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때로 뺄셈에서 시작됩니다. 불필요한 욕망을 하나 덜어냅니다. 남과 비교하는 시간을 줄입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내려놓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잠시 멈춥니다.
그렇게 덜어낸 자리에서 지금의 삶이 보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계절의 변화가 보입니다. 이미 가진 것이 보입니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자신도 보입니다.

무소유는 덜어 내는 삶
법정 스님은 행복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행복이 곁에 있음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산 중의 바람처럼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처럼 오래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법정 스님의 행복은 적게 가져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마음이었습니다. 혼자 있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여유였습니다. 자신에게 온 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분이 진정 행복하였는 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삶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진정 행복하였다는 것을요. 그 분의 삶은 한결같았습니다. 권력도, 명예도, 부도 그 분의 삶과는 멀었습니다. 그 분의 삶은 오직 고독하게 자신을 삶을 되돌아 보고, 수양하며 글을 쓰고, 봉사하는 삶이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삶의 에너지가 됩니다. 법정 스님은 욕망 자체가 보통의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 분 삶의 욕망은 맑고 고결하며 소유하지 않고 나누는 데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런 자신의 욕망대로 살다 가신 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