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지각 변동: 질풍노도의 재정의
청소년 심리 1편은 청소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다룹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존재의 지각 변동이 일어 나는 시기입니다. 실로 질풍노도의 시기이죠. 유아와 아동 기는 아이가 세상의 규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며, 그 안에서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죠.

하지만 청소년 기에 들어서면 아이는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런 시기를 스탠리 홀(G. Stanley Hall)이 말한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로 불러왔습니다. 감정은 불안정하고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고, 어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그러나 청소년기를 단순히 반항기(rebellious phase)나 문제의 시기로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비유처럼, 아동기가 규범을 따르는 낙타의 시기라면, 청소년기는 기존의 짐을 내려놓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사자의 시기입니다.
청소년의 반항은 기존 가치를 부정하기 위한 행동이 절대로 아닙니다. 새로운 나(self)를 만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죠. 그들의 반항은 독립된 존재로 서기 위한 본능이며, 성숙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어른들의 착각과 ‘타자’에 대한 폭력
그렇다면 왜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의 치열한 성장의 과정을 그토록 오해하고 통제하려 드는 것일까요? 이것은 어른들이 이미 완성되어 굳어진 자신의 렌즈, 즉 기성세대의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요동치는 세계를 재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철학적 통찰을 빌려올 필요가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서구 철학이 나(주체)의 틀 안에 타자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는 폭력을 범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레비나스는 서구 철학이 항상 나(the Self, 주체)를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이해해 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철학은 타자(the Other)를 나의 기준에 맞춰 해석하고, 심지어 나의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폭력(violence)을 범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폭력은 물리적 폭력을 위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나의 관점으로 재단하고 규정해 버리는 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즉, 타자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너를 이해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이해하려면 먼저 타자의 얼굴앞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얼굴은 나를 넘어서서 나에게 말을 거는 존재이며, 그 앞에서 우리는 윤리적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타자를 나의 틀에 넣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만남이라는 뜻입니다.
왜 설명이 필요한가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은 종종 어른의 기준으로 청소년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즉,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를 나의 틀에 넣는 폭력이 청소년 이해에서도 반복되어 온 셈입니다. 청소년의 혼란, 반항, 변화는 어른이 정해 놓은 규범의 틀로만 해석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독립된 타자이며, 그들의 변화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고유한 과정입니다.

레비나스의 관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청소년을 어른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라. 부모나 교사는 흔히 청소년을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며, 어른의 세계라는 동일성 안으로 그들을 환원시키려 합니다.
어른의 눈에 청소년의 행동이 미숙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어른들이 그들을 고유하고 무한한 타자(The Other)로서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 내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우주를 겪고 있는 절대적 타자입니다. 어른과는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때, 어른의 지도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청소년은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결핍에서 강점으로: 긍정 심리학의 시선
이제 우리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청소년 교육과 심리학은 주로 결핍과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일탈을 막을 것인가? 어떻게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줄 것인가? 와 같은 병리적 접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주창한 긍정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기는 결코 문제투성이의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강점과 미덕(virtues)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내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발아(germination)하는 역동적인 시기입니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충동성을 단순한 무모함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문제 있는 태도이죠. 그들의 충동성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과감히 뛰어드는 용기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성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내적 자원이죠.

권위에 대한 반항 역시 단순한 반항심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비판적 사고와 정의감이 자라고 있죠. 청소년은 왜 이렇게 해야 하지? 라고 질문하며 기존 질서를 재검토하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청소년들이 또래에게 몰두하는 행위는 흔히 집착이나 동조 압력으로 오해 되지만, 긍정 심리학은 이를 사랑과 친밀감을 배우는 과정으로 봅니다. 청소년은 또래 관계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법, 관계를 유지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실제로 학습합니다.
결국 청소년기의 혼란과 변화는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신호입니다. 이러한 시기는 인간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내면의 미덕을 키우며, 독립된 존재로 서기 위해서 기반을 다지는 가장 창조적인 발달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