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극복과 행복의 제 4장은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을 대하는 자세를 다룬다.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온전히 껴안는 마음 챙김의 지혜를 알아 보자.
예고 없이 들어오는 불청객, 비극
인생은 결코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의 통제권(Control)을 완전히 벗어난 심각한 비극이 닥치기도 한다. 자연 재해, 불의의 교통사고, 사랑하는 이와의 갑작스러운 사별, 혹은 치명적인 질병의 선고가 그렇다. 원인도,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운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불청객이 평화로운 일상의 문을 거칠게 부수고 들이닥친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통제 불능의 비극 앞에서 깊은 무력감(Helplessness)에 빠진다. 우리는 평소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익숙하다. 고장 난 자동차는 수리하면 되고, 막힌 하수구는 뚫으면 된다. 하지만 죽음이나 돌이킬 수 없는 상실 앞에서는 어떠한 논리적인 해결책도 작동하지 않는다. 망가진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절망 속에서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를 작동 시킨다. 가장 흔하고 강력한 방어 기제는 바로 감정의 억압(Suppression)이다. 밀려오는 끔찍한 슬픔과 고통을 회피하려 발버둥 친다.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리거나, 술과 같은 약물에 의존한다.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거짓 최면을 건다. 하지만 고통을 부정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흰 곰 효과와 억압의 역설
감정을 억압하는 행위가 왜 위험한지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 1948~2013)가 진행한 흰 곰 실험(White Bear Effect, 1987)이다. 그는 참가자들을 방에 모아두고 이렇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5분 동안 머릿속에서 흰곰을 절대 떠올리지 마십시오.
결과는 어땠을까? 참가자들은 5분 동안 평균 1회 이상 흰 곰을 떠올렸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흰 곰의 이미지는 머릿속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고 억제의 역설적 반동(Ironic Rebound Effect of Thought Suppression)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지우려 통제할수록,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대상을 더욱 끈질기게 추적하고 확인한다.
슬픔도 이와 정확히 같다. 끔찍한 비극 앞에서 슬픔을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슬픔은 몸집을 불린다. 억압 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형태의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로 폭발한다. 상처를 붕대로 칭칭 감아 숨기기만 하면, 상처는 아물지 않고 썩어 들어갈 뿐이다.
늪에 빠졌을 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
그렇다면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슬픔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즈(Steven Hayes, 1948~ )가 창시한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는 이에 대한 탁월한 해답을 제시한다. 헤이즈는 비극에 빠진 인간의 상태를 늪에 빠진 것에 비유한다.
발밑이 푹 푹 빠지는 모래 늪에 갇혔다고 상상해 보자. 본능적인 반응은 어떻게 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다리를 세차게 구른다. 하지만 늪에서는 몸부림을 칠수록 더욱 빠르게 가라앉는다. 탈출하려는 모든 저항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꼴이 된다.

늪에서 살아남는 물리적인 방법은 단 하나이다. 몸에 힘을 빼고 늪의 표면 위로 대(大) 자로 드러눕는 것이다. 늪과 접촉하는 표면적을 넓혀 몸을 띄워야 한다. 차갑고 질척이는 진흙이 등 줄기를 타고 흐르는 끔찍한 감각을 온전히 버텨내야 한다. 헤이즈는 이것이 바로 감정적 고통을 다루는 핵심 원리라고 강조한다.
슬픔이라는 늪에 빠졌을 때, 슬픔을 없애거나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지 마라. 대신 슬픔 위에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라.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느껴라. 이것이 바로 수용이다. 수용은 고통과 싸우는 데 낭비하던 에너지를 멈추고, 현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겠다는 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결단이다.
여관에 찾아온 감정이라는 손님
수용의 태도를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 작품이 있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 1207~1273)의 시 여관(The Guest House)이다. 루미는 시에서 인간의 존재를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는 여관에 비유한다.
기쁨, 절망, 슬픔, 찰나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루미는 말한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환대하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 안 가구들을 거칠게 쓸어가 버린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슬픔은 영원히 자신의 집에 머물수는 없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일 뿐이다. 슬픔이 문을 두드릴 때 문을 굳게 걸어 잠그면, 슬픔은 문을 부수고 들어와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하지만 문을 활짝 열고 슬픔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슬픔과 마주 앉아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라. 슬픔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나면, 그는 조용히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내면의 방에는 새로운 기쁨을 맞이할 텅 빈 공간이 생겨난다.
마음 챙김,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는 관찰자
비극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껴안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미국의 의학자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은 불교의 명상 전통을 현대 의학과 심리학에 접목하여 마음 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 1979)을 개발했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의 핵심은 판단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나는 슬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 챙김은 감정과 자아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둔다. 내 안에 깊은 슬픔이 머물고 있음을 나는 알아차린다 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이라고 부른다. 맑은 가을 하늘을 떠올려 보자. 하늘은 우리의 본질적인 자아(Self)다. 그리고 하늘 위를 흘러가는 먹구름, 비, 폭풍우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비극적인 감정들이다.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해서 하늘 자체가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흘러가고 흩어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폭풍우를 막기 위해 발을 동 동 구르는 것이 아니다. 흔들림 없는 관찰자(Observer)가 되어 마음의 하늘에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왔음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다. 아, 지금 내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같은 슬픔이 자리 잡고 있구나. 눈물이 쏟아질 것 같구나. 자신의 아픔을 마치 친한 친구의 아픔을 대하듯 다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슬픔은 우리가 사랑을 지불한 영수증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실과 사별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슬픔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슬픔을 기쁨의 반대말로 생각하며 병적인 증상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철학적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슬픔은 한 번도 사랑과 분리된 적이 없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콜린 머리 파크스(Colin Murray Parkes, 1928~ )는 슬픔을 가리켜 우리가 사랑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청구서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이유는 잃어버린 대상을 그토록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얕았다면 슬픔도 얕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갈기 갈기 찢어 놓는 비통함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그런 존재를 얼마나 눈부시게 사랑했는 지를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다.
따라서 충분히 아파하고 맹렬하게 슬퍼하는 시간은 애도(Mourning)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억지로 눈물을 참지 마라. 소리 내어 통곡하고, 바닥을 치며 가슴의 응어리를 토해내야 한다. 눈물은 영혼에 쌓인 고통의 독소를 씻어내는 성스러운 치유의 액체다. 우리는 충분히 쏟은 눈물 끝에 비로소 잃어버린 대상과 새롭게 연결되는 평안을 얻는다.
상처 난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
본 연구소는 상처 입은 내면을 온전히 품어 안는 인간의 숭고한 회복력을 지지한다. 진정한 치유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운 신비를 보라.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한 조개는 결코 진주(Pearl)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거친 모래알이 조개의 연약한 살 속으로 파고들어 끔찍한 상처를 낼 때, 조개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진액을 쏟아낸다. 그런 눈물겨운 진액이 오랜 시간 상처를 감싸고 굳어질 때,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영롱하고 눈부신 진주가 탄생한다.

지금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의 한가운데서 숨죽여 울고 있는 당신은 그런 비통함과 상실감을 애써 지우려 하지 마라. 그런 고통의 늪 위로 가만히 몸을 눕히고, 찾아온 슬픔의 손님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라. 당신의 가슴에 박힌 뾰족한 고통의 모래알은 마음 챙김이라는 수용의 눈물 속에서 기어이 아름다운 진주로 빚어질 것이다.
억압을 멈추고 슬픔을 온전히 껴안는 순간, 우리는 절망의 밑바닥을 차고 오르는 진짜 힘을 얻는다. 비극의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 당신의 맑고 넓어진 마음의 하늘 위로 진정한 행복 리부팅(Happiness Rebooting)의 무지개가 떠오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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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헤이즈,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2005) – ACT 및 늪의 비유, 인지적 탈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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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밧진, 『마음챙김 명상과 자기치유』 (1990) – MBSR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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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랄루딘 루미, 시집 『여관 (The Guest House)』 (1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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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웨그너, 『흰곰 억제 실험 논문』 (1987) – 감정 억압의 역설적 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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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머리 파크스, 『사별 (Bereavement)』 (1972) – 슬픔과 사랑의 상관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