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극복하면 행복할까? 역경 극복과 행복 1장은 고난의 불가피성과 내면의 수용을 다룬다. 내 외적 상처가 별이 되는 여정이다. 삶의 여정은 순탄한 잔디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시밭길도, 낭떠러지도 있다.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역경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이 바람직할까? 이번 시리즈는 역경에 처한 분들께 드리는 글이다.
피투성, 삶이라는 무대에 던져 지다
인간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역경(Adversity)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의 이러한 숙명을 피투성(Geworfenhei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존재와 시간, Being and Time, 1927>에 등장하는 핵심 철학이다. 우리는 세상에 올 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던져 진 존재다. 인간은 태어날 시대, 부모, 그리고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누구나 출발선부터 각자의 결핍(Deficiency)과 고통을 안고 시작한다. 완벽한 환경을 누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삶이라는 무대에 오른다. 역경은 삶의 기본값(Default)이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고난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질병,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믿었던 사람의 배신, 경제적 파산 등의 비극은 언제든 우리의 일상을 덮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절망 속에서 하늘을 원망하며 묻는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가? 엄밀히 말해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삶은 원래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 고난의 불가피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역경 극복과 내면 치유의 첫걸음이다.
고난은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다
혹독한 겨울, 산속을 행군 하는 부대의 지휘관을 상상해 보자.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친다. 훈련 중인 부대원은 고립의 위기에 처했다. 뼈를 깎는 추위와 극심한 배고픔이 이들을 덮친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인간은 날씨를 바꿀 수 없다. 자연의 맹위는 철저히 통제 밖의 영역이다.

하지만 지휘관은 주저앉을 수 없다.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눈보라를 앞 장 서서 나간다. 흔들림 없는 눈빛과 단호한 지시로 부대원의 공포를 잠재운다. 극한의 고난 속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 부대원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한계를 기어코 돌파해 낸다.
혹한기 훈련이 끝난 후, 살아남은 이들의 눈빛은 달라져 있다. 안락함 속에서는 결코 기를 수 없는 강인한 전우애와 굳건한 내면의 근육을 얻었다. 시련이라는 용광로가 평범한 쇳덩이를 단단한 강철로 벼려낸 것이다. 인생의 겨울도 이와 정확히 같다. 매서운 시련은 우리의 나약한 정신을 단련 시키는 훌륭한 교관이다.
상실과 고통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지혜
인간은 사랑하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보호하고 싶어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자가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아이는 수없이 비틀거린다. 무릎이 까지고 울음을 터뜨린다.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타 들어 간다. 당장 달려가 덥석 안아주고 싶다. 앞길의 모든 위험한 돌 부리를 치워주고 싶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뒤에서 지켜볼 뿐이다. 왜 일까. 넘어지는 고통을 직접 겪지 않고는 결코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중력이라는 거대한 저항과 넘어짐의 찰과상을 겪어야만 비로소 두 다리에 단단한 힘이 생긴다.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1942~ )의 이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진정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길러지지 않는다. 상실과 실패의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을 갖는다.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는 작은 비바람에도 처참하게 꺾인다. 거친 들판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만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우리에게 닥친 역경은 더욱 큰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통과의례다. 넘어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하는 주체적인 의지다.
타자의 욕망을 깨뜨리는 강력한 망치, 역경
오늘날 현대 사회는 성공과 효율에 집착한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취와 달콤한 일회성 쾌락(Pleasure)만을 선호한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 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예리한 통찰처럼, 현대인은 끊임없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산다. 거짓된 페르소나(Persona)를 쓰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다.

하지만 역경이 닥치면 이런 허울 좋은 가짜 자아는 산산조각이 난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경제적 파산은 사회적 지위라는 외피를 단숨에 벗겨낸다. 이처럼 처절한 붕괴의 순간은 형언 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역설적이 게도 그런 순간이 삶에서 위대한 축복이 될 수 있다. 껍데기가 무참히 깨져야만 비로소 진짜 내면의 알맹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역경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잣대에 갇혀 있던 우리를 해방시키는 강력한 망치(Hammer)다. 절망의 밑바닥까지 깊게 추락해 본 사람만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다.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남은 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할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고통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선사하며, 진정한 행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말 없는 생명이 전하는 진정한 위로
때로는 거창한 철학 이론이나 백 마디의 말보다 말 없는 작은 생명이 큰 위로를 준다. 깊은 상실감에 빠져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주저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자. 세상의 어떤 격려도 가식처럼 들린다.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모조리 무너진 상태다.

그때, 작은 체구의 포메라니안(Pomeranian), 솜사탕을 닮은 미니 비숑 프리제(Mini Bichon Frise)가 조용히 다가온다. 이런 작은 반려견은 결코 훈계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그저 짙은 슬픔에 잠긴 주인의 발밑에 가만히 엎드린다. 작은 심장 박동과 따뜻한 체온을 묵묵히 나눌 뿐이다.
이러한 무언의 교감은 실로 경이롭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영혼의 생채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우리는 이처럼 순수한 존재가 보내는 조건 없는 지지 앞에서 굳게 닫아 걸었던 마음의 문을 연다. 다시 살아야겠다는 미세한 생각을 가슴에 품게 된다. 자연과 생명이 인간에게 베푸는 압도적이고 경이로운 치유력이다.
아모르 파티적 수용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거나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타자의 얼굴에서 무한한 윤리적 책임을 보았다. 끔찍한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무척 예민해진다. 길가에 쓰러진 낯선 이의 곁을 냥 지나치지 못한다. 내면의 깊은 상처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이해와 공감으로 확장된 것이다.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 1875~1961)은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고 칭했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낸 자만이 다른 상처 입은 영혼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 내가 겪은 쓰라린 고통이 누군가를 다시 살려내는 맑은 생명수가 된다. 역경이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반전이다.

결국 우리는 거부와 분노를 넘어 수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us Spoke Zarathustra, 1883>에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열렬히 주창했다. 바로 운명애(Love of Fate)다.
이는 자신에게 닥친 참혹하고 가혹한 운명조차 삶의 필연적인 일부로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주체적 선언이다. 삶을 한 권의 소설책이라고 상상해 보라.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굴곡 없이 평탄하기만 한 이야기는 결코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주인공이 처절한 시련을 겪고, 한계에 무참히 부딪히고, 피눈물을 흘리며 마침내 그것을 극복해 낼 때 이야기는 비로소 위대한 서사(Epic)가 된다.
당신의 흉터는 빛나는 별이 된다
여러분은 지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가? 가혹한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의 숨쉬기조차 버거운가?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인류의 긴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무수한 이들이 그런 끔찍한 절망의 터널을 통과해 마침내 환한 빛을 찾았다.
당신의 내면에는 혹한의 폭풍우를 기어코 뚫고 나가는 굳건한 용기가 잠들어 있다. 수백 번 넘어져도 기어이 다시 일어나는 어린아이의 끈질긴 생명력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역경은 당신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가장 치열하고 눈부신 절정이 될 것이다.

고난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마라. 똑바로 서서 정면으로 마주하라.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기꺼이 껴안아라. 살갗을 찢는 상처는 언젠가 아물어 단단한 흉터가 되지만, 그런 흉터는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당신만의 고유한 별이 될 것이다. 당신의 주체적이고 눈부신 행복 리부팅은 모든 것이 타버린 바로 그 잿더미 위에서 찬란하게 다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