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디어와 행복에서는 지나간 영화를 다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행복해질까? 우리는 늘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고 산다. 지나간 과거의 실수에 대한 뼈아픈 후회(Regret)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Anxiety)도 한몫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과 행복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덧없는 상상이다. 리처드 커티스(Richard Curtis, 1956~ ) 감독의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은 이러한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영화는 영국에서 제작된 로맨틱 판타지 코미디 드라마이며, 한국에서는 약 339만 명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주인공 팀은 아주 특별한 비밀을 안고 있다. 돔놀 글리슨(Domhnall Gleeson, 1983~ )이 어설프지만 순박한 청년 팀을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팀이 21세가 되던 해,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가 가문의 비밀을 알려준다.
빌 나이(Bill Nighy, 1949~ )가 연기한 아버지는 어두운 벽장 속에 들어가 주먹을 쥐면 과거로 시간 여행(Time Travel)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을 벌거나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오직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팀의 첫 번째 목표는 확실했다. 바로 완벽한 사랑을 찾는 것이다. 그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운명적인 여인 메리를 만난다. 레이첼 맥아담스(Rachel McAdams, 1978~ )가 사랑스러운 메리 역을 맡았다. 팀은 완벽한 로맨스를 위해 끊임없이 시간을 되돌린다.

어색했던 첫 만남의 대화를 수정한다. 첫날 밤의 서투름을 만회하기 위해 몇 번이고 과거의 벽장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초반 부의 시간 여행은 이처럼 유쾌한 해프닝(Happening)의 연속이다. 팀의 삶은 마법처럼 순탄해 보인다.
하지만 인생의 비극 앞에서는 시간 여행도 무용지물이 된다. 동생 킷캣이 교통사고로 불행에 빠진다. 팀은 동생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사고를 막는다. 하지만 현재로 돌아온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다.
과거가 바뀌자 자신이 사랑하던 딸의 모습이 전혀 다른 아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섭리 앞에서는 시간 통제권이 사라진다. 과거의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으켜 현재의 소중한 것들을 파괴한다. 팀은 결국 뼈저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동생의 불행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딸을 지킬 것인가.
더욱 큰 시련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다. 아버지는 폐암 선고를 받는다. 팀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더 먼 과거로 가면 자신의 자녀들이 태어나지 않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인생의 절대적인 종착지 앞에서도 인간은 무력하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사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바로 영원 회귀(Eternal Return)다. 니체는 인간에게 가혹한 질문을 던진다. 너의 삶이 모래 시계처럼 무한히 뒤집혀서 반복된다고 해도, 너는 이 삶을 다시 원하겠는가?
이는 정말 엄청난 무게의 질문이다. 삶의 빛나는 순간 뿐만 아니라 지독한 고통과 상실마저도 모두 긍정해야만 예라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은 숱한 시간 여행의 끝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진정한 행복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애가 필수적이다. 상처와 실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슬픔을 포함한 현재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숭고한 태도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 팀에게 행복의 비결을 하나 알려준다. 첫째,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하루를 살아라. 둘째, 그다음 날 다시 똑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살아라. 그렇게 살면, 첫 번째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엔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조언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성숙해진 팀은 아버지의 조언마저 뛰어넘는다. 그는 더 이상 단 1초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매일매일을 의식적으로 살아간다. 오늘이 미래에서 돌아와 두 번째로 사는 날인 것처럼, 혹은 생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온전히 삶과 일상을 음미한다.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결혼식 날에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는 혼란조차 파티의 일부로 즐긴다.
이는 긍정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의 궁극적 경지다. 마음이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배회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때, 우리는 깊고 흔들림 없는 행복감을 경험한다.
평범한 출근길의 따스한 햇살, 지하철 역사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직장 동료와의 실없는 농담도 모두 기적처럼 다가온다. 일상은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매 순간이 단 한 번 뿐인 일회의 기적이다.
매일 같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미세한 차이 – 패터슨
우리는 시간을 거스르는 판타지 같은 능력이 전혀 없어도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짐 자무쉬(Jim Jarmusch, 1953~ ) 감독의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이 그런 조용하고도 압도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이 시간을 능동적으로 뒤섞는다면, 패터슨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가만히 응시한다.
주인공의 이름도 패터슨이다.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 1983~ )가 듬직하고 과묵한 청년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는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 시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내버스 운전 기사이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의 일주일을 극 사실주의(Hyperrealism)적인 시선으로 조명한다.
그의 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고 반복적이다. 알람도 없이 매일 아침 6시 10분 경에 눈을 뜬다. 잠든 아내에게 가볍게 키스하고 성냥 갑을 바라보며 시리얼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23번 노선의 버스를 온종일 운전한다. 퇴근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삐딱한 애완견 마빈을 산책 시킨다. 그리고 동네 단골 바(Bar)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마감한다.
어찌 보면 숨이 막힐 듯 지루한 일상이다. 하지만 패터슨은 이러한 반복을 전혀 지루해 하지 않는다. 그는 틈틈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노트에 시를 쓴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기 전, 벤치에 앉아 폭포수를 바라볼 때 그는 펜을 든다.

승객들이 뒤에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식탁 위에 놓인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갑의 파란색 디자인, 맥주 잔에 맺힌 물방울이 모두 시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여기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사상을 접목해 볼 수 있다. 들뢰즈는 그의 난해하며 유명한 저서 <차이와 반복, Difference and Repetition, 1968>에서 중요한 명제를 던졌다. 반복은 결코 동일한 것의 기계적인 회귀가 아니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이는 반복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되는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야말로 존재의 진정한 본질이다.
패터슨의 일상은 겉보기에 완벽히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경이로울 만큼 고유하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햇살 각도가 있다.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 마주친 쌍둥이들의 모습이 다르고, 버스에 고장 난 부위가 다르다.
아내 로라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꾼다. 골쉬프테 파라하니(Golshifteh Farahani, 1983~ )가 연기한 아내 로라는 정적인 패터슨과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하루는 커튼에 기하학적인 흑백 무늬를 칠하고, 다음 날은 컵케이크 사업을 구상하며, 또 다른 날은 컨트리 가수(Country Singer)가 되겠다며 기타를 산다. 패터슨은 아내의 끊임없는 변덕과 일상의 미세한 차이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는 이 차이들을 매우 섬세한 언어로 직조해 낸다. 그에게 일상은 매일 새롭게 쓰이는 창조의 무대다. 패터슨이 사랑하는 시인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다. 실제 패터슨 시 출신인 시인은 사물 외에 어떤 관념도 없다(No ideas but in things) 라고 주장했다. 평범한 사물 속에 깃든 진실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주인공 패터슨 역시 이런 시인의 태도를 고스란히 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이들의 잔잔한 일상에 예기치 않은 비극이 찾아온다. 부부가 외출한 사이, 애완견 마빈이 패터슨의 소중한 시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단 한 장의 복사본도 없었다. 수년 동안 그가 일상에서 길어 올린 모든 문장이 휴지 조각이 되었다.
그는 일생일대의 끔찍한 상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패터슨은 개를 때리거나 분노에 차 소리치지 않는다. 절망의 늪에 빠져 삶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묵묵히, 깊고 텅 빈 슬픔을 감내한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선 그는 패터슨 폭포 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그때 한 일본인 여행객이 그에게 다가온다. 나가세 마사토시(Masatoshi Nagase, 1966~ )가 연기한 신비로운 남자는 패터슨 시를 찾아온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패터슨의 상심을 직감한 듯, 헤어지기 전 그에게 텅 빈 새 노트를 선물한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텅 빈 페이지는 또 다른 시작이자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패터슨은 노트를 한참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조용히 펜을 꺼낸다. 그리고 다시 첫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철학처럼,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Becoming)하는 주체다. 상실과 허무를 딛고 다시 일상을 시로 창조해 내는 그의 모습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스크린에서 일상으로, 행복의 재구성
영화 어바웃 타임과 패터슨은 장르적 문법과 화법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로맨틱 판타지(Romantic Fantasy)의 매력적인 형식을 빌려 대중의 감성을 크게 울렸다.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 사실주의 기법으로 일상의 질감을 포착해 시적인 울림을 주었다.
두 영화 모두 극적인 사건도, 자극적인 갈등도 없다. 하지만 두 작품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경이롭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회복이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심각한 착각에 빠진다. 행복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주어지는 특별한 트로피라고 생각한다. 소셜 미디어 속 타인의 보정 된 삶과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특별한 여행지, 값비싼 물건, 극적인 성공만이 행복의 조건이라 믿는다. 그런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한없이 초라하고 가치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스크린 속 서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실은 다르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요란하게 주어지는 이벤트(Event)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낙관주의(Optimism) 역시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은 마치 신체의 근육과 같다. 매일 헬스장에서 바벨을 들 듯,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훈련하고 연습해야만 길러진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 탈 벤-샤하르(Tal Ben-Shahar, 1970~)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1966~) 교수도 행복은 배우고 연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하루, 자신이 마주한 작고 소소한 풍경들에 관심을 가져보자. 길가에 무심하게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의 색깔, 사랑하는 가족이나 동료와 나누는 짧지만 다정한 눈 맞춤, 이른 아침 창가에서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온기처럼 미세한 감각을 놓치지 않고 촘촘하게 주워 담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바웃 타임의 팀이 보여준 태도를 삶에 적용해 보자. 오늘 하루를 두 번째 사는 날처럼, 혹은 죽음 직전에 기적처럼 다시 얻은 마지막 날처럼 온전히 음미해 보자. 뼈아픈 상처와 지우고 싶은 후회마저도 고유한 삶의 일부로 껴안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운명애다.
그리고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쳇 바퀴 도는 듯한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와 아름다움을 예리하게 관찰하자. 삶이라는 텅 빈 캔버스에 매일 자신 만의 고유한 시를 써 내려가는 마음가짐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곧 진정한 의미의 자기 수용(Self-Acceptance)으로 이어진다. 스스로의 평범함을 긍정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여유와 이해도 생겨난다. 외부의 거센 파도와 예측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단단한 행복의 기초는 이처럼 소박한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디어 속 주인공들의 눈부신 여정이 스크린 안에서 끝나 버리면 많이 아쉽다. 그러한 여정은 극장 문을 나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 여정으로 이어진다. 두 편의 훌륭한 영화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우리에게 나지막이 묻고 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가?
이제 우리가 각자의 삶이라는 일상의 무대 위에서 직접 답할 차례다. 내 삶의 감독이자 각본가가 되어 자신의 일상을 행복의 이야기로 새롭게 써 내려가면 어떨까? 다시 바라본 우리의 일상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기적적이고 아름답다. 다만 당신만 모를 뿐이다.






